2009년 04월 09일
달로 - 한유주

달로?
0.
암스트롱이 달에 간 시절에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다. 작가도 나이를 속인 것이 아니라면 마찬가지 일 것이다. 하지만 어제 난 PC방에서 암스트롱을 봤다. 우주복을 입은 채로 누군가와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있더라. 달에는 또 언제 갈 거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내 목 언저리를 한참 바라보다 저 저글링에 당해낼 재간이 생기면 이번에는 쥐가 아니고 나도 같이 데려가 줄 거라 말하고 나에게서 5000원을 가져갔다. 그녀도 같이 데려 갈 거냐고 물어보자, 암스트롱은 인상을 구기며 나를 노려보았다. 한참을 노려보던 암스트롱은 지금 저글링을 하고 있는 게 그녀라고 말하며 내가 먹던 라면을 가져갔다.
당연히 거짓말이다.
0-1.
달의 스크랩이야. 환영이 말한다. 하지만 유령이 아니면 살 수가 없다고 주의를 준다. 자신은 환영이니까 상관없다 말하며. 과연 환영은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니 안개가 잔뜩 끼어 모든 것이 유령처럼 뿌옇다. 멀지 않은 곳에서 포성이 울려 퍼지고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머리위로 뭔가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 위를 쳐다보니 파울 챌란이 허공에 무덤을 파고 있다. 파울 챌란에게 어떻게 하면 나갈 수 있냐고 묻는다. 닥치면 된 다라고 말하고 그는 계속 무덤을 판다. 머리를 털어내니 말라 죽은 단어들이 후득 거리며 쏟아진다. 입을 다문다. 걸음을 띠어보니 땅바닥이 종이처럼 찢어진다. 아니 땅바닥은 종이다. 포탄에 찢어진 종이의 틈을 들여다본다. 과거와 현제와 미래가 녹아버린 단어들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 모양새가 우스워 계속 쳐다보니 그들은 이내 녹아버려 늪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곧 케르베로스도 저 곳으로 쳐 넣을 거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박제된 이야기들도 마찬가지야. 이곳에서 그들의 가치는 똑같아. 공간을 채우는 아이콘이 되어버리는 거야. 환영이 속삭인다. 우리는 닥치는 법을 배워야해. 커트 코베인과 키르케고르가 웃으며 틈 속으로 투신해버린다. 멀지 않은 곳에서 지옥의 묵시록의 말론 브란도가 비치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전쟁기술을 가르쳐주고 있다. 난 진짜 시체들 속에서 영화를 찍었다고. 디카프리오는 장난감 총으로 말론 브란도를 쏘고, 말론 브란도는 화소단위로 나뉘어 공간에서 삭제되어 버린다. 전쟁은 언제나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 나는 주변에 떨어져 있는 날카로운 단어를 던져 웃고 있는 디카프리오를 삭제시켜 버린다. 생의 실감 따위는 환상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라고.
0-2.
이제 보니 이곳은 끊임없이 붕괴되어 가고 있다. 환상이 실체를 만나서 붕괴되고. 시간은 서로를 겹치며 붕괴되고. 어디론가 끊임없이 도망가며 카드를 흩뿌리던 사람들은 바다에 빠져 붕괴되어버린다. 우리는 가상의 세계에 걸 맞는 인간이 되어야해. 환영이 사라지면서 중얼 거린다. 손을 내미니 환영은 모래가 되어 틈 속으로 스륵 흘러내려간다. 침묵한다. 그리고 앞으로 걷기 시작한다. 어딜 가도 길은 하나다. 앞이거나 뒤고, 오른쪽이거나 왼쪽이다. 수백 개의 이정표가 길을 닫아버린다. 이정표의 숲 속에서 폴리곤으로 만들어진 암스트롱이 쥐 열세마리와 함께 폴리곤 치즈를 뜯어 먹는다. 화소 부스러기를 닦아내며 암스트롱은 디지털 카메라로 내 얼굴을 찍는다. 내 얼굴은 두루마기 휴지가 되어 둘둘 말려 암스트롱의 목에 걸린다. 즉흥성에 매혹당한 테러리스트의 낭만과 폭발하는 쌍둥이 빌딩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강사의 야만을 부디 용서하길. 야만이라 강요된 인식을 믿고 있는 우리의 교만을 용서하길. 어디에도 이르기 싫은 채 달의 뒤편으로, 북극으로, 지옥으로 도망치는 우리의 모순을 용서하길. 암스트롱과 열세 마리의 쥐들이 한 목소리로 기도 한다. 아멘. 열세 마리의 쥐들이 암스트롱에게 달려든다. 방청객들의 박수 소리가 들린다. 거짓말이다. 이것은 고통이 표현되는 방식일 뿐이다. 손가락을 떼어내 오독오독 깨문다. 거짓말이다. 이것은 권태가 표현되는 방식일 뿐이다.
달로.
달로 가야해. 그래야 죽어버린 말들이 살아나고 박탈당한 인식의 시간도 부여 될 거야, 우리는 감각을 제물로 바치고 레토릭을 얻었어. 그래서 타락했지. 안개뿐인 공간에서 영화가 상영된다. 주연은 이완 맥그리거. 나는 선택하지 않는 걸 선택하겠다. 안개에 솟아난 화면이 다가온다. 우리 세대는 ......고, ......다. 패이드 아웃. 쇼트 컷으로 편집된 영화는 끊임없이 장면이 바뀐다. 달로, 달로. 맥그리거는 음악소리를 따라서 어딘가로 걷거나 주저앉는다. 도시는 밤이거나 낮이다. 거짓말이다. 오래전에 릴이 풀려버린 영사기는 ......가 되어버렸다. 끊임없이 상쇄를 일으키던 모든 것이 삭제된다. 안드로이드는 전자양의 꿈을 꾸고 우리는 종이 폴리곤의 꿈을 꾼다. 이 곳에선 무슨 꿈을 꿀 수 있을까. 도대체 이 공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까.
# by | 2009/04/09 22:51 | 그외 | 트랙백 | 덧글(0)
























